선물

 마침내 가이는 쓰러졌고, 세계는 허무 앞에 좌절했다. 그러나 울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 일의 이후는 존재하지 않을 터였다. 그래도 마지막 가는 길에 서프라이즈 하나 정도는 남겨두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카운터펠트의 머리를 스쳤다.


 베켓의 실험실 최상층부에서 큰 폭발이 일어났다.
 수호자들을 대신하여 이카루스가 베켓에게 연락을 취했으나, 베켓과는 끝까지 연결되지 않았다. 그의 기자재들 또한 폭발에 휘말린 것일까. 연구실 상층부에 있었을 플레코 또한 연락이 닿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스트라이더가 하늘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공포탄을 발사해보아도 라브 또한 나타나지 않았다.
베켓을 두고, 좆같은 데다가 능력까지 없는 학자라며 이카루스는 욕지거리를 내뱉었지만 그뿐이었다.
수호자로서 함께 활동하던 때의 이카루스와는 다른 모습에, 라크리스가 가만히 그의 표정을 살폈다. 그리고는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한번 쓸어 넘겼다. 라크리스는 늘 말보다 행동으로 표현하는 사람이었고, 모두가 그의 침묵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말 그대로 목을 조여오는 침묵을 제일 먼저 깨뜨린 것은, 언제나처럼 이카루스였다. 그는 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며 중얼거렸다. 강자 앞에서 맥없이 물러서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던 이카루스가 목소리를 내리 깔았다. 스트라이더가 혀를 한번 찼지만, 이카루스는 반응하지 않았다. 진심으로 내뱉은 말인 듯했다. 세계는 패배했다는 말을 대신할, 고르고 고른 말이었다.
그렇다고 한들, 라크리스는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허무 앞에 신뢰는 무력했다.

 라크리스는, 악을 쓰며 소리치는 이카루스를 끝내 뒤로 했다. 그들은 서로를 잘 알고 있었던 만큼, 서로에 대해 너무나도 큰 기대를 한 듯했다. 이카루스가 끝내 패배한 세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라크리스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처럼, 라크리스 또한 끝내 승리한 세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카루스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뿐이었다. 다른 뜻은 없었다.
 스트라이더는 상황을 아직 잘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라크리스는 입을 열지 않은 채 모래바람을 가르며 사라져 갔고, 이카루스는 알 수 없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누구도 결정하라 강요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결정하라고 강요하고 있었다.
스트라이더에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카루스를 괴롭게 만든 사실이 이곳에 덮쳐왔을 때 지금의 그는 이에 대항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누구라도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주저앉은 자 옆에는, 수호자가 자리했다.
 허무가 세계를 집어삼켰듯이, 침묵은 평화를 집어삼켰다.

 그때쯤, 승리자는 산산조각난 패배자의 몸을 퍼즐 맞추듯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살려두는 것도 자신이 할 수 있었으니, 죽이는 것도 자신만의 일이라고. 그리고 그것은, 불쾌하기 짝이 없는 현실이 되었다. 참으로 끔찍한 광경이었다.
가이의 작은 몸을 대충 이어 붙이니, 멀리서 보았을 때는 그가 꼭 바닥에 엎드려 있는 모습처럼 보였다. 폭발에 신체 몇 군데는 이미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지만 말이다.
 고개를 천천히 치켜들었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칠흑같은 어둠이 불멸자를 덮쳐오고는 한다.
세상을 창조하던 손가락은 고깃덩어리에 불과했다.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던 입술에서는 괴상한 바람소리만이 가득했다. 아마도 그곳은, 뼈가 시리도록 추운 곳이었으리라. 카운터펠트에게 있어, 무쓸모함이란 꼭 그런 것이었다; 살이 에도록 차가운 것. 고독 속에서 얼마나 떨었던가.
 이 작은 꼬마 때문에, 자신이 사랑했던 모든 것으로부터 버림받았다니. 전지전능한 유일신은 도무지 인정할 수가 없었다. 마른 세수를 하고, 숨을 들이켜 보고, 가끔씩 몰아치는 웃음을 있는 그대로 내뱉어봐도 제 속은 어째서인지 더 공허해지는 듯했다. 이는 그에게 있어 더할 나위 없는 치욕에 가까웠다. 공허, 텅 빈 것. 고작 내게서 얘를 제했을 뿐이잖은가. 그만두자.
 손장난을 그만두고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있자니, 저 멀리서 낯익은 소리가 들렸다. 쇠붙이끼리 부딪히는 소리에 카운터펠트는 입꼬리를 위로 끌어당겼다.

 미적 감각이 없는 라크리스가 보기에도 꽤 깔끔해보이던 베켓의 실험실은 글자 그대로 걸레짝이 되어 있었다.
폭발의 규모가 꽤 컸던 것인지, 워프게이트를 포함한 기자재 대부분은 그 형체조차 제대로 알아보기 힘들었다. 라크리스가 한숨을 내뱉으며 잔해들 사이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돌연 선명한 푸른색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끼며, 라크리스는 발걸음을 빨리 했다.
 세계는 비로소 승리했다. 이 장면을 이카루스와 같이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 머리를 순간순간 스쳤다. 저절로 웃음이 났다. 돌아가자. 무너진 세계를 재건하자. 네가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주마. 라크리스는 그런 말을 가볍게 뱉으며, 가이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를 일으켜 세우려 했다.

 툭,
 가이의 손은 힘없이 미끄러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스스로를 허무로부터 두 번 구원한 세계는, 마치 제 힘을 다했다는 듯이 산산조각 난 채였다. 라크리스의 손 안에 든 것은 가이의 손가락 몇 마디뿐이었다.
그는 당황했다. 제가 본 것을, 제가 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세계의 패배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몇 번이고 눈을 비벼봐도 세계는 망가진 모습 그대로였다. 오히려, 가이의 주변을 장식하듯 고여있던 붉은 웅덩이가 제 눈에 들어왔을 뿐이었다. 당장이라도 끓어오를 듯이 선명한 붉은색에 라크리스는 고개를 돌리고야 말았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는 현실을 재건할 방법을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그때 수호자들이 보았던 폭발은 무엇인가. 플레코와 라브는 이를 정말 피하지 못했다는 것인가. 베켓은 어디로 갔는가. 모두가 믿었던 세계는 이제 어디로 흘러가는가.
라크리스의 머릿속이 대답 못할 의문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이 모든 물음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조차 지금의 그에게는 역부족이었다.

 장발의 검사는 현실 앞에 두 발자국 정도 물러났다.
그런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승리한 세계가 아닌,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이 웃고 있는 허무, 오직 그 한 가지뿐이었다. 이는 모든 것을 창조하고, 모든 것을 파멸시킨 허무함이었다.
라크리스는 그런 모습에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재앙은 그의 일그러진 얼굴에서부터 분노와 상실감, 형용할 수 없는 깊은 슬픔을 읽어낼 수 있었다. 배신감마저 섞여 있는 눈빛은 재앙의 입맛에 딱 맞아떨어졌다.
카운터펠트는 속 깊은 곳에서부터 터져나오는 웃음을 보란듯이 터뜨렸다. 모든 것을 잃은 곳에는 그의 웃음소리만이 가득했다. 돌연 특유의 차가운 얼굴로 돌아온 그는, 라크리스의 턱을 강하게 잡아 올렸다.

 "내 마지막 선물은, 마음에 들었나?"

 만족스럽다는 듯이 한마디 한마디를 꼭꼭 씹어 뱉는 카운터펠트의 모습은 분노와 자만으로 일그러져 있어 그 저의를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었다. 탐욕적으로 움직이는 혀 끝은, 말 그대로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자신의 시작과 끝을 담당하는 자 앞에 일개 수호자는, 그 어떠한 행동도 취할 수 없었다. 무력한 라크리스는 카운터펠트의 '선물'을 받아낼 뿐이었다.


 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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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정리하나만

같은 창조주여도 무걔탑은 겉과 속이 같을 것 같은데 카펠은 아닌 것 같음 전혀... 아닌 것 같음 뭐랄까 속였던 행적을 들켰을 때 그래내가햇어^^)9망치맞을래?? 할 수 있는 놈이랑 그렇지 못한 놈은 그 죄질이 좀... 다르지 않은가 싶어 하고싶은말이머냐 후자가더나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