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 품사
  • 2023. 9. 12. 13:06
1월

 나라서 안 된다면 책임전가를 할 생각이야.


 "저런, 불쌍한 살리에리."

 세상에, 불쌍하다니요? 살리에리는 그만 시선을 떨굴 수밖에 없었어요. 의미 없는 격려 따위는 필요 없다고 자신이 먼저 윽박지르긴 했었지만, 이렇게까지 몰아갈 필요는 또 없지 않냐는 듯이 퉁명스럽게 입을 비죽거리기도 해보네요. 자신의 체격만큼이나 자그마한 발버둥인가요.

 "이번엔 또 뭐가..."

 "저번과 똑같아. 당신의 곡에서는 여전히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요."

 "보통 그런 걸 불감증이라고 하지 않나?"

 "글쎄요. 감勘도, 감각感覺도 잃어버리게 된 건 오히려 당신이 아닐까 싶은데."

 쇼팽은 그런 살리에리의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요, 다행스럽게도 여전히 당신에게는 다음이 있다는 말과 함께. ...불 난 집에 부채질 하나요, 지금? 저보다 한참이나 높이 있는 그 손을 잔뜩 째려보고는 가볍게 쳐내는 살리에리. 짜증 내는 새끼고양이 같은 모습에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마는 쇼팽을 뒤로하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기로 해요. 내 전부를 파헤쳤다는 듯이 부드럽게 웃지 마, 쇼팽. ...말을 꿀꺽 삼키고는 발걸음을 옮겨요.

 도망치듯 복도를 빠져나와 방으로 들어온 살리에리. 커튼이 쳐져 있어 한차례 걸러진 햇빛만이 적막한 방을 채우고 있네요. 이 공간마저 그의 심경을 건드리는 것만 같아요. 그에겐, 한차례 걸러 들어올 햇빛조차 없는데. 이런 그가 지금,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도저히 곡을 쓸 기분이 아니네요. 그렇다고 잠을 자고 싶은 것은 또 아니에요. 무거워진 다리를 침대 근처까지 겨우 끌고 와서, 문득 생각해요.

 '막연하게 사랑받고 싶은 기분일 때 다른 유닛들은, 그 붉은 꽃은 대체 어떻게 할까?'

 아마 지금쯤 대합실에서 쇼팽이 타준 밀크티의 달콤함에 대해 진지하고도 발랄한 토의를 하고 있겠죠. 각양각색의 목소리들이 무색해질 정도로 붉은 꽃의 목소리가 가장 높고도 독특할 거예요. 밉지만 싫어할 수 없는 목소리, 정열을 노래할 줄 아는 재능, 대충 그런 것들을 보고 유닛들은 사랑스럽다고 하나 봐요. 아, 그런 거라면... 그런 칭호는 원래 전부 그의 것이었어요. 멋대로 뺏어가 놓고 사과 한마디 없는 그 꽃을 어떻게 그렇게까지 칭송해줄 수 있는 건가요? 무기력과 증오, 조금의 순수한 부러움이 엎치락뒤치락하며 그의 머릿속을 헤집어요. 거리를 둬봤자 손해인 것은 오히려 그이기 때문에 방문을 걸어 잠글 수조차 없어요. 세상이 당신에게 정말 너무하는군요, 저라도 당신의 이름을 불러드릴게요. 불쌍한, 살리에리.

 낯가림이 심하고 사교성이 떨어지는 살리에리와 달리, 앨리스 내에서 SNS 스타로 활동하고 있는 쇼팽은 불쌍한 그를 위해 어느 날부터 소식통의 역할을 맡아주고 있어요. 유닛들 사이에서 요즘 유행하는 것들처럼 자잘한 정보부터, 요즈음에 여왕을 잠재울 적합자가 나타났다는 중대한 정보까지. 아뇨, 살리에리가 원하는 정보는 따로 있어요, 알잖아요. 그런데도 모르는 척, 안달 날 정도로만 정보를 주는 쇼팽의 그 검은 속을 정말 살리에리만 아는 것일까요? 사람 좋은 척하긴. 아무리 살리에리라고 해도 처음부터 그 붉은 꽃을 미워한 건 아니란 말이에요(걱정하지 말아요, 살리에리. 적어도 나는 당신의 편이에요).

 붉은 꽃, 말 그대로 혜성처럼 등장해서는 위태로운 살리에리의 마음을 있는 대로 휘저어 놓았어요. 이상하리만치도 사랑스러운 그 꽃은 살리에리에게 없는 모든 것을 갖고 있어요. 결핍된 것에 대한 허전함과 그것을 보란 듯이 해소해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 그러면서도 괜스레 피어오르는 질투는 지금의 불쌍한 살리에리의 전부예요. 어쩌면 쇼팽은 이런 살리에리를 바랐을지도 몰라요. 이전의 살리에리는 너무나도 자만심에 빠져있었거든! 당신의 이름 대신 그 꽃의 이름만이 들리게 된 것은 대체 언제부터였죠, 살리에리? 그런 것까지 저에게 묻지 말아요, 당신이 제대로 떠올려서 똑바로 삼키란 말이야. 그 이름 앞에 당당해지지 못한 꼴이 참으로 가련하네요! 그런 태도의 당신을, 대체 누가 기억하고 싶겠어요? 조롱하는 듯 그 입을 꾹 다물고서, 더할 나위 없이 순하게 웃는 쇼팽의 얼굴이 자꾸 떠오르는 것은 도대체 왜일까요.

 추측만 하던 목소리가 직접 고막을 울리는 듯한 감각에, 살리에리는 정신을 차려요. 지독한 것, 독백할 시간 정도는 방해하지 않아도 괜찮잖아. ...아이러니하게도 살리에리는 그 꽃과 한 지붕 아래 살면서도 제대로 대면해본 적이 없어요. 늘 꽃이 먼저 다가오면, 늘 살리에리가 피했거든요. 도망쳤다고 하는 게 맞겠죠? 그의 음악은 언제나 살리에리의 동기부여가 되지만, 정작 목소리를 비롯한 다른 모든 것은 겨우 살리에리의 추측일 뿐이에요. 가여운 살리에리, 내가 왜 걔랑 대화해야 해? 하면서도 쇼팽이 주는 그 꽃의 정보라면 사족을 못 쓰죠. 어디 가서도 거짓말은 못 하겠네요. 아, 티타임이 드디어 끝났나 보네요. 어서 와, 쇼팽. 살갑게 맞이하는 것이 가증스럽기 짝이 없군요.

 "살리에리, 모차르트는 당신을 싫어하지 않아요. 언제나 당신에게 열린 마음으ㄹ..."

 "그런 설교는 나중에 해. 밀크티 얘기도 필요 없어. 본론부터 말해."

 "바깥에 나가자는 게 제 본론이에요. 왜 그 말괄량이가 모두의 아이돌처럼 활동하고 있는지 당신 눈으로. ... 이것만 전해드리려고 왔어요."

 "이 초라한 꼴을 비웃는 그 화려한 얼굴을, 내 눈으로 직접 보라고?"

 "하다못해 이젠 듣는 법마저 잃어버리셨네요."

 "..."

 "10월에 콘서트가 열려요, 모차르트의."

 "... 왜 알려주는 거야. ...거기 참석해서 바보 같이 박수나 치고 있으라고?"

 "글쎄, 좀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나요? 그렇게 울적하게 있을 때가 아닐 텐데."

 익숙한 듯 커튼을 걷어내는 쇼팽. 빛이 쏟아져 내리자 눈이 부신지 살리에리가 얼굴을 찡그려요.

 "혼자 할 수 없으면, 다른 유닛과 함께하면 되겠죠."

 녹색만이 남아있는 자신을 보고도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보아하니 역시 쇼팽은 보통내기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스쳐 지나가고, 뒤이어 자신 혼자서는 역시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공포감이 엄습해요. 쇼팽이 알았다면 분명 지금까지 더한 곡도 써왔으면서 인제 와서 답지 않게 내숭 떨지 말라고 했겠죠. 하지만, 혼자서는 할 수 없다는 것도, 그런 자신을 그가 도와주지 않을 것도 살리에리는 잘 알고 있어요. 살리에리는 쇼팽과 달리 인기가 많지도 않고, 다른 유닛을 능숙하게 다룰 줄도 모르는 데다가, 협력하는 방법조차 제대로 모르는걸요. 쇼팽이 나가고 조용히 닫힌 방문. 결국 혼자 남겨진 것은 또다시 살리에리인데. 이런 살리에리에게,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든 그게 옳은 방법은 아닌 것 같다고 말해 줄 유닛도 없을 정도니 말 다 했죠.

 목표를 잡은 살리에리. 쇼팽이 예상한 대로 흘러가면 참 좋을 텐데요.

 1월의 꽃샘추위가 창문을 흔들자, 귀찮다는 듯이 다시 커튼을 쳐버리는 그 손이 작게 떨리는 것을 살리에리는 과연 눈치챘을까요. 앞으로 9개월.

[백업] 野情

한 다리 건너 듣는 네 소식이 그리도 마음에 들 수가 없었다.


 방 안을 가득 메우던 타자기 소리가 멈추었다. 사전예고 없이 다가온 정적은 몇 번을 겪어도 적응할 수 없었다. 움직여야만 하는 이유뿐인데도 멍청한 건지, 자각하지 못한 건지 미련할 정도로 움직이지 않는 손끝에 피곤함에 절은 시선을 내던진다. 마스크를 사이에 두고 부끄러움에 내뱉은 숨이 오늘따라 유독 답답하게 느껴진다.

 여왕의 폭주라느니 적합자의 구원 서사라느니 그런 건 전우치에게 전혀 흥밋거리가 되지 못했다.
자신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도 관심 밖의 일이었다. 오로지 타인의 속을 파먹으며 살기 바빴다. 사부님의 검엔 희뿌연 먼지가 쌓인 지 오래다. 언제부터 틀어졌는지 알 방도가 없었다. 로그를 뒤져봐도 그 무엇도 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누렸던 재능이 무색할 정도가 되었다. 전혀 움직이지 않아 보기 흉측하게 말라버린 팔을 보고 있자면 이상하게도 그가 떠오르고, 입으로 내봐도 나오는 것은 그가 듣기 좋아했던 말들뿐이다. 제 로그의 모든 것이 바보처럼 보인다. 그 가운데 그가 있었다. 인정할 수 없는 분한 기분, 전우치는 다만 쓰레기로 가득한 책상을 내리친다.

 "알고 있는가, 지킬 수 없는 꽃이야말로 예쁜 법이다."

 붉은 머리의 꽃감관이 필사적으로 지키던 꽃밭에서, 애처로이 울던 그가 뱉은 혼잣말을 전우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휘날리던 색이 다른 양갈래의 머리카락과 사이로 보이던 새하얀 목덜미, 울분에 젖어 가냘프게 떨리던 손끝 하나하나까지... 그의 신체의 모든 것은 이제, 바람을 타고 무겁게 떨어지던 진정성 가득한 눈물에 섞여 전우치의 애절함이 되었다. 벽 한 면을 가득 채우고도 부족한지 매일 솟아나는 두려움과 그리움의 근원이 되었다. 폭풍우처럼 몰아치던 그의 감정은 여전히 불씨로 남아 전우치의 낮을 괴롭히고 밤을 늦어지게 하며 새벽의 말동무가 되어주고 있다. 도저히 끊어낼 수 없이 피어오르는 망상에 침전하는 지금의 전우치의, 해 질 녘은 오롯이 그의 것이다.

 "♪"

 바탕화면 오른쪽 모서리에서 작은 창이 하나 났다. 그에게서 온 메일이다. 책상 앞으로 달려오는 와중에 언제 버렸는지 모를 과자 봉지를 밟고 넘어질 뻔했다. 아랑곳하지 않고 시선을 그 메일 알림에서 떼지 않는 것이 그가 보면 안쓰럽다고 한 소리 했을 것이다. 그걸 생각하니 마스크 속 전우치의 숨이 더 진해진다. 마우스를 달칵였다. 다급하게 움직이는 손끝이 이제는 조금 야속하기도 하다. 터질 듯 고동치는 심장을 부여잡고 보낸 문자에 대한 답변이라고 하기에는 소박한 그의 대답. 두 줄 남짓한 것이 변함없이 늙다리 아가씨의 꾸지람이다. 이것이 전우치를 더 안심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아이러니다. 그는 전우치의 입가에 기분 나쁜 미소가 번지는 것을 참을 수 없게 한다.

 걱정 좀 시켜볼까, 하면서도 불안감을 대놓고 감추기 위해 화면을 끈다. 도피하고 싶다는 것이 목적이었다. 커튼 사이로 불어 들어오는 그의 색을 품에 안는다. 이렇게 하고 있으면 제가 그의 곁에 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눈을 감고 이리저리 그의 로그를 훑어본다. 아가씨 혼자서도 잘 해내는 모습을 보니 얄미우면서도 더욱더 사랑스러운 것이었다. 오늘 황혼도 그와 함께다.

밤, 혼자, 저택에서.

 축 늘어진 것은 린의 머리카락뿐만이 아니었다. 과연 우리는 어디까지 잡아먹혀야 한을 풀어줄 제물로서의 소임을 다할 수 있었던 걸까. 린은 그 깊음이라고 할 만한 것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마음으로는 이해하지만, 그뿐이었다.

 나즈막이 한숨을 뱉으면 이 넓은 저택이 온통 그것으로 가득 차버린다. 축축하다. 새벽녘에 홀로 몇 번이고 거닐었던 이 공간이 아득히 먼 것으로만 느껴진다. 남자는 분명 지금쯤 린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한 채, 그녀에게 울지 말라고 말했겠지. '울지 말라니, 네가 뭘 안다고. 죽지 말라는 말도 계속 무시했으면서.' 린은 그렇게 생각하며 손등에 축축한 눈을 부볐다. 손에 쥔 남자의 시계가 그녀의 볼에 거칠게 부딪혔다. 사람 다룰 줄 모르는 건 남자도, 그의 시계도 마찬가지였다.

 그다지 울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자신의 짧은 생각으로 유카가 그녀를 저버렸을 때도, 세이타로보다 정신력이 약했던 유우타가 제멋대로 되어버렸을 때도 린은 울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런 건 지금의 린에게 어울리지도 않았을뿐더러, 이곳의 모두를 일의 해결로부터 흩뜨리는 일이 되어버리니까. 그래, 모두. 지금의 야마자키 린을 버티게 해주었던 것은 린과 함께 있어주는 다른 셋이었다. 세간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올곧게 린을 대해주는 셋을, 린은 있는 그대로 지키고자 부단히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노력했지만, 정말 최선을 다했지만.

 "유카, 정말 미안해."

 담백한 사과에서 '내가 전부 다 망쳤어.'에 가까운 자기 비관이 뚝뚝 흘러내렸다. 아마 세이타로는 이런 린의 옆에서, "유카는 너를 원망하지 않을 거야. 그것보다 빨리 나갈 방도를 찾아야 해."라는 간편한 말을 했을 것이다. 한 손에는 서가에서 꺼내 온 책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린에게 손을 뻗으며 잡으라는 듯 손짓했을 것이다. "망할 대머리 자식." 린은 그 말을 직접 귀로 듣고 싶었다. 고된 일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어 얄쌍하면서도 굴곡이 잘 잡혀 있는 그 손을 직접 잡고 싶었다. "젠장..."
린은 관계에 취약하다. 원한이 깊은 그것은, 어쩌면 그것을 알고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이 사건의 내막을 자세히는 알지 못하지만, 린은 줄곧 유카의 일을 생각했다. 쉽게 잠에 들지 못하고 꼭두새벽에 일어나 창고를 뒤졌고, 잘 쓰지도 않았던 머리를 굴려 유카를 보호하려 했다. 자신이 아닌 유카가 그런 일을 당했어야만 했음을 받아들일 수 없어, 되레 인어의 마음을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린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린은 관계에 취약하다. 평정심 내지는 기둥을 잃어버린 린의 마음은 대를 잃어버린 아이비와 같았다. 없어도 살 수는 있지만, 살랑거리는 바람에도 크게 휘청이는 그 모습은 참으로 안쓰럽게 보였다.

 살랑거리는 바람에도 크게 휘청이는 그 모습은 세이타로에게 있어 참으로 안쓰럽게 보였다. "이제서야 하는 말이지만, 다른 사람이 나를 보고 너의 '사육사'에 가깝다고 했었는데, 알고 있어?"라는 어찌 됐든 상관없을 말들을 캔맥주에 섞어 마셔버릴 수 있을 만한 시간은 없었다. 너만은 살아 나가야 한다는 무책임한 말을 끝으로, 세이타로의 시간들은 전부 린에게 던져졌다. 린은 이 시계의 의미를 파악할 수 없었다. 다만 이 작고 쓰잘데기 없는 것을 맡겨두고 자유로워진 남자가 괜히 또 미워질 뿐이다. "다시 살아야 한다니, 진짜 네가 뭘 안다고." 린의 손끝에서 뿌리쳐진 시계가 허무하게 깨졌다. 맡겨졌던 세이타로의 모든 시간이 린의 손끝에서 바스라졌다. 찢어지듯, 부서지듯 울리는 소리에 린은 자기도 모르게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깨진 유리 사이로 축축한 늪의 물이 늘어지듯 흘러나왔다. 몇 명이나 저 얕은 물에 잠겨 죽었던 걸까. 린은 그렇게 생각하며, 

12min.
결코 바꿀 수 없는 과거와 그럼에도 꺼지지 않는 아내에 대한 애정 끝에 정신이 망가진 남자의 머릿속에서 일어난 일 포장 너무 잘한 거 아냐? 진짜 기가 막힌다... ... 아 ㅋㅋ 아... 이게 공포지 이게
 
이 경우 극심한 공허감에 버티다 못한 주인공이 아내(=**)를 잊겠다는 결심이 무너졌다고 해석할 수 있다.
아니실화야? 야나죽고싶다진짜 아진짜실화야이게?사랑이뭐라고................... 아니사랑중요하지...아니근데 아... 이게사랑인가? 아... 두렵다..
 
계속하기 = 무한 루프에 스스로 갇히기잖아 아진짜이게...이게뭐야? 왜이래? 그만해...
 
근데 이렇게까지 사랑받으면 그건 그것대로? 괜찮? 아닌가? 아ㅠ 혼란스러워
스트리머들은 어케 이런 걸 음 좋았어용~ 하고 끊고 다른 게임으로 넘어갈 수 있는 거지? 난 위키 다 찾아보고 이스터에그 다 둘러보고 질질 짜면서 님들은···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같은 토론회 열게 되는데...
아진짜죽고싶어... 이게사랑이라면나는... 난 뭐지? 아 · · ·
 
스팀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인데 내가 좋아하는 게임이 다 그렇지 뭐... 싶어서 아무 생각이 없음
나는 K-드라마도 재밌다고 잘 보는 편이고 뜬금없는 어쩌구도 괜찮게 봐서 이 정도면 무난하지 싶었는데 평가 넘 박하게 들어와서 놀라긴 했다 애초에 루프인데 루즈해지는 건 당연한 게 아닌가 싶고...
 
게임성 좋은 건 이미 인정받았기 때문에 이것보다 스토리 자체에 대해 얘기하고 싶음···
주인공의 사랑! 그게 내겐 너무 달콤하고 좋은 거야 그냥 가정을 지키고 싶은 것일 수 있겠지만 그 가정 자체가 없던 거라면? 크리피하고 디스거스팅하고··· 그렇지만 그래서 좋은 건데 없는 것을 지키려 하는... 그 삿된 마음을 사랑해
 
 
 
인어늪은 맥락이 다르지만 나는 만일 린세이린이 이어진 관계였다고 한다면? 세이타로가 린에게 가지고 있던 마음 또한 결국 할 마음이 없는 사람을 ~려 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보거든· · · 이건 사랑이 아니라 단순히 ** 해소였겠지만
 
유우타는 린에게 반응하지 않았다는 점에서(세이타로와 유카의 경우에도) 그 인어의 저주는 어느 정도 호감이 있어야만 했던 것 같고? 이게 맞아야 린세이린이 이어질 수 있는 거라서···
어쨌거나 저 주인공이나 세이타로나 '너무 사랑해서 그랬어요'라고 말할 수 있잖아 그래 나는 이 말이 좋다고...
 
 
 
나 하우스 배드 엔딩 사랑했던 것도 이거 때문이네 돌이켜보니 짜증 나는 취향
아니 근데 너무 사랑해서... 사랑 오직 사랑 때문에 소중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그 무모함과 정열과 처절함이 좋은데 어떡해 뭐 이걸 어떻게 안 좋아해
 
 
 
겁쟁이와 계속하기가 한 게임에 있다는 게 진짜 변태 같다...

나는 너를 만날 때까지 이 세상을 재창조했어

  • 품사
  • 2021. 9. 20. 12:32
좋아하게 된 이유

인게임 요소에 집착하는 오타쿠라서ㅠ...

 

사실 베가는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스토리까지 있는 것치고 팬게임 퀄리티가 이 정도면(심지어 제작 툴도 다른 것 같은데!) 기적 아닌가 싶어서 너무너무 사랑하는 편...

나는 메시에가 죽은 애라는 거 올해 8월에 들어서야 알았고 그 전까지는 만들기 싫어서 대충 만들었나? 했었다.
스테이지랑 밸런스가 너무 안 맞아서 좋다는 생각은 안 들었던 그런 보스였는데 동인 들어오니까 눈물 팡
밸런스 좀 안 맞으면 어때!!! 하게 되어버린

인게임 얘기를 좀 더 해보자면... 해보고 싶은데 이미 게임을 내리신 지 오래라 뭐라고 말을 더 할 수가 없음 베가4는 실행이 왜인지 안 되고 있어서 조작감도 모름(ㅋ) 다른 가이시리즈랑 다르게 밈 자체가 게임이 된 게 아니고 스토리 안에 밈을 적당히 잘 섞었다는 게 제일 좋았던 듯
이런 점에서... 1은 예외임 ㅠ

IWBTG도 시작은 여행, 가이의 성까지 가기가 목적이었는데 거기까지 가기 위해선 보스들을 다 족쳐야 한다 하지만 그들이 왜 보스인지는 나오지 않았고 상상하라면 해볼 수야 있겠지만 아무래도 성에 차지는 않지... 보시 L 퀀쿼더블로우 등등 모두 i wanna라는 말에 기대어 진행되는 게임이라고 생각함
애초에 원작도 스토리 중심이 아니었고 컨트롤 실력 인증용 겜이다 방송용 컨텐츠다 정도로 여겨지고 있어서 그 시리즈 자체를 좋아하던 나는 너무 아쉬웠는데 베가는 A to Z까지는 아니더라도 A가 왜 C가 됐는지 정도는 제시해주니까 그게 너무너무 좋았다
물론 카펠이 이스캡 뒤통수 후려치고 나랑 뜨게 될 것이며 그동안 봤던 친구들의 패턴을 전부 모방할 거란 건 시작부터 예정돼 있었고 솔직히 뻔하지 않았다고는 말 못하겠는데 걔가 그렇게 등장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카펠의 이름에 제시해두었던 점이 카운터펠트라는 캐릭터를 살렸다고 생각함 그래서 2 막보전에서 질리지 않고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고...

더 자세한 설정은 이제 원작설정개미굴틀딱사골충들이 알아서 찾아볼 수 있게 적당히 조절했다는 게 좋음 결국 이 게임도 컨트롤 겜인데 스토리로 뇌절 치면 할 맛 떨어지거든요 이런 겜은 오타쿠들이 하는 게 아니고 컨트롤 겜 좋아하는 매니아나 하는 거라서... 그런 사람들은 관심 없잖아 스토리에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플랫폼 이런 장르임에도 이런 스토리를 넣었다? 멋진 도전이었다고 생각하고 뇌절 안 친 거 진짜 대단함 ㅠ

말이 다른 길로 샜는데... 스토리가 있다는 같은 이유로 IWDTHB도 좋아함 근데 HB는 가이가 스위치 겜을 할라하니까 버그가 잇어서 그 속으로 빨려들어갓다~라고 세계관을 아예 제멋대로 생각할 수 있게 편한 스토리를 정해둔 거야ㅠ
내가 아는... 가이시리즈 중에 유일하게 스토리 있는 겜이 저 두 개뿐이라서 베가를 더 사랑할 수밖에 없는 거겠죠 저는 원작틀딱어쩌고니까

IWBTG Series 전반에 대한 해석

1. 모든 가이시리즈의 주인공(=키드 스프라이트)는 원작 가이의 키드와 동일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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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창작을 비롯한 모든 팬게임은 원작 이후에 탄생...했으니까요. 당연한 게 아닌가...
당연한 게 아니냐는 말로 일축하기엔 좀 위험한 것 같아서 더 풀어보자면 원작에서 키드는 가이가 되었다는 점에서 게임 제목의 I는 키드 자신이라는 걸 충분히 유추할 수 있으며, I wanna라는 말에 기대어 진행되는 대부분의 아이워너시리즈는 그 기본 캐릭터에 원작과 같은 키드를 두고 있음.
팬게임 자체 세계관에서 다른 I가 등장하지 않는 이상, 원작의 스토리로 미루어보았을 때 팬게임에서도 I는 키드로 설정해두었음을 알 수 있고...

결국, 모든 팬게임이 그런 건 당연히 아니지만 일반적으로는 앞서 말한 대로 원작 키드 = 팬게임 키드일 수밖에 없음

 

1-1. 위의 해석이 맞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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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참일 수밖에 없는 해석이긴 한데 키드 = 가이(≠ the father) = 베스트가이 = 보시 = 루키민 = 팬게임(!) ···이 됨 사실 이게 아이워너시리즈의 진 묘미가 아닐까(본가와 팬게임은 동일한 게임이다(X), 가이시리즈 각각의 게임들은 단순히 키드라는 캐릭터가 이뤄낸 업적에 불과하다(O)).

시리즈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시리즈는 I wanna라는 말로부터 시작되었고 당연히 원작 가이는 키드의 패륜이자 꿈을 이룬 것으로 엔딩이 나긴 했지만 그건 키드가 가이가 되는 과정 하나의 스토리의 엔딩이지 키드 인생 전체의 엔딩이라고 볼 수는 없었고.

 

2. 키드는 죽은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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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브 로드를 할 줄 아는 이상 키드는 죽을 수 없다는 거... 키드는 원앤온리라는 생각 다음으로 강경하게 밀고 있는 듯.
Tas처럼 키드도 사실 세이브/로드로 이어붙인 생명이기에 엔딩에서 죽었다는 확실한 언급이 없는 이상 키드는 절대로 죽을 수 없고(논점에서 빗나간 말이지만... 가이를 물리친 키드는 사실상 한번도 죽지 않은 채 거기까지 간 것과 마찬가지임!), 다만 자신이 되고 싶은 것을 팬게임의 세계관을 통해 이뤄나갈 뿐임
본가와 팬게임의 제작툴이 "대부분" 비슷하다는 점에서 각각의 팬게임은 본가의 세계 중 어딘가라고 볼 수 있을 것 같고... 여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옴니버스 형식으로 시리즈 전체가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생각도 듦.
이를 본가가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과 당장 공식 후속작인 가이덴도 그래픽 완전 달라져서 이게 본가라고? 할 정도란 점을 들어보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해석!

데스 수를 세는 거랑은 별개로 키드 자신은 언제나 깨끗한 몸가짐으로 보스에 진입하게 되는 거니까... 죽은 상태로 진입할 수 없으니까... 정도로 생각하면 좋을 듯?

 

3. 옴니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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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게임과 원작 가운데 '키드의 이야기 중 하나'라는 큰 연결고리가 있고 이것이 있기에 서로 다른 게임들을 옴니버스 방식이라는 이름 아래 엮을 수 있다고 봄.
원작 가이, 베가, 보시, L, MAS, CD, P 등등등 시작은 개판이었지만 끝은 창대했으니까 게임의 엔딩이 '원하는 걸 이룬다'로 요약할 수 있는 거면 그건 원작과 뜻이 맞다고 봄... 그래서 옴니버스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당연히 플랫폼만 봤을 때 아이워너 맞다 싶은 게임들 한정.

 

@Concentrate4Luv
오전 2:59 · 2021년 9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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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대비

  • 품사
  • 2021. 7. 26. 09:51

결정적 요인

  • 품사
  • 2021. 7. 26. 09:48

베스트가이

  • 품사
  • 2021. 7. 24. 12:07
 친애하는, 작은 영웅에게.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부 가득 차오르는 뜨거움은, 벅차오름과 곧잘 혼동되고는 하지. 이 벅차오름이란 네가 내게 알려주었던 그것이기도 하다.
네가 나를 향해 겨누었던 총구의 끝을 아직도 기억한다. 슬슬 기억 속에서 멀어져 가는가 싶더니, 다시금 빛나기 시작하는군. 평생을 그리움 같은 건 모른 채 살아온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았나보구나. 너로부터 배운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잘 지내고 있는가. 이런 글이 아니고서는 네 소식을 알 방도가 없다는 게 참으로 아쉽군. 이 편지의 첫 문장은 그 학자가 정해주었다. 네게 쓰는 편지라고 밝히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르지. '뜨거움'이라는 단어에 별다른 뜻은 없다. 지금 이곳은 타들어 가는 듯한 무더위로 가득하지. 그뿐이다.

 늦었지만, 네가 혼돈을 거두어 갔음에 큰 감사를 표하고 싶다. 다 지난 일이라고 치부하지는 말아주었으면 좋겠군. 이 글도 일차적으론 그를 위해 쓰이고 있으니. 당시의 우리는 서로 인사를 주고받을 만한 경황도 없잖았는가. 너는 말 그대로 게이트 속에서 빛이 되었으니 말이지. 덧붙여, 네가 네 세계에 잘 도착했는지, 우리 쪽에서는 알 방법이 없었다.
 너를 보낸 후의 얘기를 조금 해주자면, 세계를 다시 일궈나가기란 내 생각보다도 더 벅찬 일이더군. 우린 겨우 두 사람뿐이었으니까. 게다가 나는 수호자로 사는 삶을 버린 지 오래였을뿐더러... 애초부터 그런 쪽에는 흥미가 없었다. 그런 내가 마지막 인류라니. 별로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허탈감? 뭐 그런 것들을 느꼈던 것도 같군. 확실히, 이런 감정과 너 같은 영웅은 그다지 어울리지 않아.
물론 허탈감만이 행동의 모든 이유는 아니었다. 생각해 보아라, 가이. 모든 인간의 최후에는 허무함이 있다. 그러나 나와 학자가 겪고 있는, 그리고 겪게 될지도 모를 허무함은 좀 다른 결이다. 내가 죽은 후에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음은 당연한 일이 아니다. 이건 내가 이 세계를 재건하겠다고 결심한 이유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나는 학자에게 도움을 요청하려고 했다. 힘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도 있으니 말이지. 그러나 그는 뭐라고 말도 하지 않더군. 넋 나간 사람처럼 굴었다. 아니지, 이미 그는 넋이 나간 지 오래. 단순히 너를 향한 감사와 애정이 펜을 움직이게 한 것이라면 참 좋았을 텐데.

 무엇이 그를 괴롭게 만들었을까.
내게 이 문제는 세계를 재건시키는 것보다도 중요한 건이 되었다. 결국 너와 그자의 도움 없이 세계 단위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그의 도움이 필요했으니 말이지.
그의 상태는 생각보다 꽤 심각했었고, 나는 깊이 고민하는 수밖에 없었다. 과거형으로 적었지만, 상태는 호전되지 않은 채다. 현재진행형이라는 말이 좋겠군. 머리 쓰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지만, 내게도 직감이라는 건 있었다.
 사실 너와의 두 번째 만남이 이뤄지기 전부터, 그가 이상한 낌새를 보이곤 했었다더군. 꽤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듯싶지. 다른 수호자들의 말을 전해 들었었다. 하지만 내 두 눈으로 확인한 것도 아니었고, 이 세계의 안녕 따위는 더 이상 내 관심사가 아니었기에 자세한 내막까지는 알지 못했었다. 그때 좀 알아뒀으면, 지금의 일을 처리하기 좀 더 수월했겠군. 네게 물어보기라도 했었어야 했나.
 창조주의 구슬, 기억하는가? 그건 어찌 보면 이 세계를 굴러가게 할 도구이면서 동시에 저 불쌍한 학자의 유일한 동력원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티팩트 하나 때문에, 원래의 성격을 죽이고 네게 다정하게 굴다니. 카운터펠트라고 했던가, 그자는 베켓에게 있어 확실한 구원이었던 것 같군. 보통의 피조물이라면 이제 질려버린 이름이로서니 모두가 그러란 법은 없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절망적인 중얼거림이 들려온다.
 그렇게 치면, 그에게 있어 너는 꽤 눈엣가시였겠군. 누가 누굴 얼마만큼 원망했고, 얼마만큼 저주했는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논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이 땅의 마지막 지인이 무너지는 모습을 그냥 지켜봐야 하는 것은, 그보다도 더 마음을 괴롭히는구나. 베켓은 간간이 너를 찾고는 한다. 좋은 의미는 아니다. 아마 그자가 네게 승리하고, 이 땅의 모든 생명체를 다 쓸어버렸어야 그는 진정으로 웃을 수 있었을 테지.
물론, 내가 모르는 저 두 사람의 관계, 특히 그자를 향한 베켓의 생각 등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건 다름 아닌 너였다. 너는 이미 내가 말한 모든 것들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재차 묻고 싶구나. 어떻게 생각하는가, 영웅이여. 뭐, 처음부터 네 선택에 의한 구원이 아니었으니 네가 모든 짐을 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동정한다는 뜻이다.

 알고 있겠지만, 네가 세상을 지켜냈다고 보는 자들이 있는 만큼, 네가 세상을 망가뜨렸다고 보는 자도 있었다. 그자를 봉인시킨 우리를 공격했던 것 또한 너였으니까. 나는, 그 모든 의견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 누가 어떻게 됐는지보다, 네게 그럴 만한 힘이 있었음이 내게는 더 중요하다.
그러나 더 나은 방안이 아예 없었던 건지에 대해, 나를 포함한 그 누구도 고민하지 않았음에 대해서는 후회스럽다. 카운터펠트는 패배했지만, 그건 그자의 패배가 아니다. 네 승리다. 역설적이게도 그자는 우리를 상대로 패배한 적이 없다. 지금 이 꼴을 보니 더욱 확신이 간다.

 가이, 너는 분명 옳은 일을 했다.
그러니, 다른 생존자들이 네게 무슨 말을 했는지 간에 이 세계의 불화에 대해 크게 마음 쓰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의 창조주라는 자격을 달고 있는 자가 카운터펠트인 이상, 이 세계의 일은 이미 결정 난 것과 마찬가지였다. 네 잘못이 아니라는 의미다. 오히려, 너와 같은 아이에게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바란 것이겠지.
 네가 떠난 후, 난 여러 고민을 해왔다. 대부분은 쓸모없는 고민이었지만, 한 가지 배운 것이 있다. 사실 이것을 알려주기 위해 펜을 잡았다고 해도 무방하겠군. 우리는, 적어도 나는 이런 고민 아래 행동해본 적이 없었다. 미안한 말이지만, 내가 보기에는 너도 마찬가지다. 왜 한 쪽의 말만 듣고 움직였냐며 너를 가르치려는 게 아니다. 나는 그럴 만한 사람이 아니기에. 그러나 너는 영웅이잖은가. 한 번 정도는 생각해봐야 하지 않겠나.
네게 구원받은 자가 네게 해주는 처음이자 마지막 도움이라고 생각해주면 좋겠군.

 이제 와서 너 혹은 그자를 다시 이 세계로 불러옴이 정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너는 어디까지나 그의 폭력적인 태도를 저지하기 위해 소환된 존재이니 말이다. 남은 자들의 일은 남은 자들이 해결해야 하리라. 이 편지가 네게 닿든, 닿지 못하든 너는 네 세계에서 아이답게, 영웅답게 행동해주면 그만이다.

 펜을 너무 오래 쥐었더니, 손가락 마디가 아려오는군. 역시 나는 싸움꾼 같은 것이 체질인가 보구나.
이만 말을 줄이겠다.

더위 조심하도록 해라.

라크리스.

 추신. 그런 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혹여 그자와 재회하게 된다면 베켓을 기억하고 있느냐고 묻지 마라. 온전히 잊히는 것이 더 나아 보이니.


 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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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뜰아 아무리 생각해봐도 일 다 끝난 후에 제정신인 놈은 베켓이 아니라 라크리스일 것 같애 음... 진짜 아무리 생각해도 과학자인 주제에 신 믿다가 세상 날릴 뻔했다는 걔는 믿음이 자신의 전부였을 거라고 생각해 나는... 뭐 라크리스도 그다지 깨끗한 정신은 아닐 것 같지만 그나마...?
재앙이 휩쓸고 간 자리에 남은 거라곤 두 사람밖에 없는 거네... 가이도 제 세계로 돌아갈 것이 뻔하고 카운터펠트는 또 추방당했으니까... ... 굳이 이랬어야만 하는지 다른 좋은 방법은 없었던 것일지 라크리스는 그닥 머리 쓰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이런 고민을 할 수 있는 건 이제 얘밖에 없는 거네...
2에서의 수호자들은 나눠가진 카다섯글자의 힘을 빼앗길 수 없었기 때문에 가이를 막았던 거고 3에서의 라크리스는 힘을 겨뤄보고 싶어서 싸움을 건 거라면 아니 그것보다도 가이를 원망하지는 않았던 걸까?
스트라이더는 지옥에서 기다리겠다고까지 말했는데 카다섯글자가 아니라 가이가 모든 일의 원흉이었다고 본 게 아닐까... 이미 이런 해석을 한 사람이 있는데 라크리스라고 걔를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느 정도 생각이 깊은 건지 모르겠다 얘는

@Waiting4Surnmer · 오후 5:11 · 2021년 7월 21일 · Twitter Web App

대사 정리

  • 품사
  • 2021. 7. 5. 11:54
선물

 마침내 가이는 쓰러졌고, 세계는 허무 앞에 좌절했다. 그러나 울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 일의 이후는 존재하지 않을 터였다. 그래도 마지막 가는 길에 서프라이즈 하나 정도는 남겨두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카운터펠트의 머리를 스쳤다.


 베켓의 실험실 최상층부에서 큰 폭발이 일어났다.
 수호자들을 대신하여 이카루스가 베켓에게 연락을 취했으나, 베켓과는 끝까지 연결되지 않았다. 그의 기자재들 또한 폭발에 휘말린 것일까. 연구실 상층부에 있었을 플레코 또한 연락이 닿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스트라이더가 하늘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공포탄을 발사해보아도 라브 또한 나타나지 않았다.
베켓을 두고, 좆같은 데다가 능력까지 없는 학자라며 이카루스는 욕지거리를 내뱉었지만 그뿐이었다.
수호자로서 함께 활동하던 때의 이카루스와는 다른 모습에, 라크리스가 가만히 그의 표정을 살폈다. 그리고는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한번 쓸어 넘겼다. 라크리스는 늘 말보다 행동으로 표현하는 사람이었고, 모두가 그의 침묵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말 그대로 목을 조여오는 침묵을 제일 먼저 깨뜨린 것은, 언제나처럼 이카루스였다. 그는 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며 중얼거렸다. 강자 앞에서 맥없이 물러서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던 이카루스가 목소리를 내리 깔았다. 스트라이더가 혀를 한번 찼지만, 이카루스는 반응하지 않았다. 진심으로 내뱉은 말인 듯했다. 세계는 패배했다는 말을 대신할, 고르고 고른 말이었다.
그렇다고 한들, 라크리스는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허무 앞에 신뢰는 무력했다.

 라크리스는, 악을 쓰며 소리치는 이카루스를 끝내 뒤로 했다. 그들은 서로를 잘 알고 있었던 만큼, 서로에 대해 너무나도 큰 기대를 한 듯했다. 이카루스가 끝내 패배한 세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라크리스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처럼, 라크리스 또한 끝내 승리한 세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카루스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뿐이었다. 다른 뜻은 없었다.
 스트라이더는 상황을 아직 잘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라크리스는 입을 열지 않은 채 모래바람을 가르며 사라져 갔고, 이카루스는 알 수 없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누구도 결정하라 강요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결정하라고 강요하고 있었다.
스트라이더에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카루스를 괴롭게 만든 사실이 이곳에 덮쳐왔을 때 지금의 그는 이에 대항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누구라도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주저앉은 자 옆에는, 수호자가 자리했다.
 허무가 세계를 집어삼켰듯이, 침묵은 평화를 집어삼켰다.

 그때쯤, 승리자는 산산조각난 패배자의 몸을 퍼즐 맞추듯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살려두는 것도 자신이 할 수 있었으니, 죽이는 것도 자신만의 일이라고. 그리고 그것은, 불쾌하기 짝이 없는 현실이 되었다. 참으로 끔찍한 광경이었다.
가이의 작은 몸을 대충 이어 붙이니, 멀리서 보았을 때는 그가 꼭 바닥에 엎드려 있는 모습처럼 보였다. 폭발에 신체 몇 군데는 이미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지만 말이다.
 고개를 천천히 치켜들었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칠흑같은 어둠이 불멸자를 덮쳐오고는 한다.
세상을 창조하던 손가락은 고깃덩어리에 불과했다.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던 입술에서는 괴상한 바람소리만이 가득했다. 아마도 그곳은, 뼈가 시리도록 추운 곳이었으리라. 카운터펠트에게 있어, 무쓸모함이란 꼭 그런 것이었다; 살이 에도록 차가운 것. 고독 속에서 얼마나 떨었던가.
 이 작은 꼬마 때문에, 자신이 사랑했던 모든 것으로부터 버림받았다니. 전지전능한 유일신은 도무지 인정할 수가 없었다. 마른 세수를 하고, 숨을 들이켜 보고, 가끔씩 몰아치는 웃음을 있는 그대로 내뱉어봐도 제 속은 어째서인지 더 공허해지는 듯했다. 이는 그에게 있어 더할 나위 없는 치욕에 가까웠다. 공허, 텅 빈 것. 고작 내게서 얘를 제했을 뿐이잖은가. 그만두자.
 손장난을 그만두고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있자니, 저 멀리서 낯익은 소리가 들렸다. 쇠붙이끼리 부딪히는 소리에 카운터펠트는 입꼬리를 위로 끌어당겼다.

 미적 감각이 없는 라크리스가 보기에도 꽤 깔끔해보이던 베켓의 실험실은 글자 그대로 걸레짝이 되어 있었다.
폭발의 규모가 꽤 컸던 것인지, 워프게이트를 포함한 기자재 대부분은 그 형체조차 제대로 알아보기 힘들었다. 라크리스가 한숨을 내뱉으며 잔해들 사이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돌연 선명한 푸른색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끼며, 라크리스는 발걸음을 빨리 했다.
 세계는 비로소 승리했다. 이 장면을 이카루스와 같이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 머리를 순간순간 스쳤다. 저절로 웃음이 났다. 돌아가자. 무너진 세계를 재건하자. 네가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주마. 라크리스는 그런 말을 가볍게 뱉으며, 가이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를 일으켜 세우려 했다.

 툭,
 가이의 손은 힘없이 미끄러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스스로를 허무로부터 두 번 구원한 세계는, 마치 제 힘을 다했다는 듯이 산산조각 난 채였다. 라크리스의 손 안에 든 것은 가이의 손가락 몇 마디뿐이었다.
그는 당황했다. 제가 본 것을, 제가 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세계의 패배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몇 번이고 눈을 비벼봐도 세계는 망가진 모습 그대로였다. 오히려, 가이의 주변을 장식하듯 고여있던 붉은 웅덩이가 제 눈에 들어왔을 뿐이었다. 당장이라도 끓어오를 듯이 선명한 붉은색에 라크리스는 고개를 돌리고야 말았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는 현실을 재건할 방법을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그때 수호자들이 보았던 폭발은 무엇인가. 플레코와 라브는 이를 정말 피하지 못했다는 것인가. 베켓은 어디로 갔는가. 모두가 믿었던 세계는 이제 어디로 흘러가는가.
라크리스의 머릿속이 대답 못할 의문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이 모든 물음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조차 지금의 그에게는 역부족이었다.

 장발의 검사는 현실 앞에 두 발자국 정도 물러났다.
그런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승리한 세계가 아닌,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이 웃고 있는 허무, 오직 그 한 가지뿐이었다. 이는 모든 것을 창조하고, 모든 것을 파멸시킨 허무함이었다.
라크리스는 그런 모습에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재앙은 그의 일그러진 얼굴에서부터 분노와 상실감, 형용할 수 없는 깊은 슬픔을 읽어낼 수 있었다. 배신감마저 섞여 있는 눈빛은 재앙의 입맛에 딱 맞아떨어졌다.
카운터펠트는 속 깊은 곳에서부터 터져나오는 웃음을 보란듯이 터뜨렸다. 모든 것을 잃은 곳에는 그의 웃음소리만이 가득했다. 돌연 특유의 차가운 얼굴로 돌아온 그는, 라크리스의 턱을 강하게 잡아 올렸다.

 "내 마지막 선물은, 마음에 들었나?"

 만족스럽다는 듯이 한마디 한마디를 꼭꼭 씹어 뱉는 카운터펠트의 모습은 분노와 자만으로 일그러져 있어 그 저의를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었다. 탐욕적으로 움직이는 혀 끝은, 말 그대로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자신의 시작과 끝을 담당하는 자 앞에 일개 수호자는, 그 어떠한 행동도 취할 수 없었다. 무력한 라크리스는 카운터펠트의 '선물'을 받아낼 뿐이었다.


 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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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정리하나만

같은 창조주여도 무걔탑은 겉과 속이 같을 것 같은데 카펠은 아닌 것 같음 전혀... 아닌 것 같음 뭐랄까 속였던 행적을 들켰을 때 그래내가햇어^^)9망치맞을래?? 할 수 있는 놈이랑 그렇지 못한 놈은 그 죄질이 좀... 다르지 않은가 싶어 하고싶은말이머냐 후자가더나쁘다고

IWRTG; I Wanna Return To Gustav - 後

  • 품사
  • 2021. 6. 16. 19:51

문장이란 작은 뜻을 담은 단위인 단어의 연속체라고 하더라.

  • 품사
  • 2021. 6. 15. 15:34

  • 품사
  • 2021. 6. 15. 14:50

의문점들 정리

  • 품사
  • 2021. 6. 15. 11:51

수여

  • 품사
  • 2021. 6. 14. 22:37
IWRTG; I Wanna Return To Gustav - 前

 "아오... 씨발. 타케 이 똥쟁이 새끼야. 술 다 처먹었으면 치우고 꺼져."

 구스타브Gustav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뒷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정강이에 반복해서 일어나는 통증은 생각보다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술을 진탕 마셔 제 속이 제 것이 아닌 자에겐 더더욱. 깊은 짜증이 몰려왔다. '옳거니, 씨발! 망치로 저 새끼의 대가리를 후드러까야 다시 잠을 잘 수 있겠구나!' 구스타브는 눈도 제대로 다 못 뜬 채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긴 했는데......

 그의 눈앞에는 술주정을 부리는 타케 이테아시 대신,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아담한 키를 가진 꼬마가 놓여 있었다. 어찌나 아담한지, 구스타브의 정강이를 다 넘지 못한 부근에서 꼬마의 푸른 모자가 보였다. 챙이 넓은 모자였기에, 그의 얼굴은 반대로 잘 보이지 않았다.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분명 구스타브는 생각보다 깨끗한 집에서 똥쟁이 하나에 황제 하나와 함께 '적시고' 있었다. 타케 이테아시가 주는 잔을 마지막으로 하고, 이제 상을 무르자고 말했던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어쨌거나 지금 그가 알 수 있는 사실은 단 한 가지뿐이었다. 여긴 자기가 술판을 벌이던 그 집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여긴 어디고 이건 대체 뭔가, 하니......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애초에 제 관할 구역이 아닌 것 같았다.

 "뭐냐, 이 만들다 만 것 같이 생긴 스프라이트는."

 "......"

 탕, 탕, 탕, 탕. 익숙한 통증이 느껴진다. 꼬마는 대답도 않은 채, 구스타브의 정강이를 향해 총탄 네 발을 발사했다. 정확히는, 그 높이가 꼬마의 최선이었다.

 "내 정강이를 후드러까든 나발을 하든 통성명은 하고 나서 해야 하지 않겠니? 이 필멸자 새끼야."

 "......"

 통성명을 하자는 말에도 그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구스타브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자비롭고 자애로우신 우리의 창조주 구스타브에게도 인내심의 한계라는 것이 존재할 터. 더군다나 그는 지금 속이 충분히 쓰린 상태였다.

 "내가 지금 속이 안 좋거든? 뒤지기 싫으면 적당히 해라."

 "......?"

 탕...

 총소리가 잦아들었다. 끝까지 얼굴 한번 보이지 않던 꼬마가, 천천히 모자를 매만진다. 곧이어 그들은 처음으로 서로의 눈을 마주 보았다. 처음 보는 소년의 얼굴은, 그 또래 나잇대의 아이가 가지고 있지 않을 만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이윽고 그런 꼬마의 얼굴에 '물음표'로 가득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 표정에 구스타브의 헛웃음이 화답했다.
 구스타브에게는 이 공간 자체보다도, 조그만 반항아의 행실이 더 흥미로웠다. 설마 그 총 같지도 않은 총으로 자신을 공격했을 줄이야. 그럼에도 꼬마의 눈빛에는 진심이 어려있었다. 아무리 구스타브라고 한들, 그런 눈빛에 대놓고 네 총알에 의해 입은 대미지보다, 내 숙취와 위통으로 입은 대미지가 더 크겠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카운터펠트Counterfelt가 제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음을 가이는 잘 알고 있었다. 새로운 공격 패턴인 것일까. 가까이 가면 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창조주인지 뭔지가 정말 속이 안 좋아서 헛소리를 뱉는 건 아닐까. 어느새 가이의 얼굴엔 그런 의심 어린 걱정만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이상한 카운터펠트'에게로 다가가려고 했다. 막말로, 자신은 죽어도 'R'키 하나면 그만이니까.

 꼬마가 조그마한 발을 내딛은 그 순간, 다시금 총성이 울렸다.

 총성의 시발점은 꼬마의 손에 들려있던 총이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미니어처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작은 총은, 적은 충격에도 튀어 오르듯 굴러다니기에 충분했다. 오발탄은 재수 없게도 제 주인을 향했다. 비비탄과 비슷한 크기의 총알이 그의 다리를 관통했다. 바닥으로 쓰러지는가 싶던 꼬마는,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아니지, 피를 사방으로 흩뿌리며 사라졌으니 '흔적'이 남기는 했다.

 엥.

 구스타브의 입에서는 외마디 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러니까, 저 작은 애가 자기보다 더 작은 총을 떨어뜨렸고, 그 안에서 그것보다 더 작은 총알이 나왔는데... 지금 저 조그마한 걸 맞고 죽은 거라고?
 이게 말이 되는지 어떤지를 떠나서, 여기는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아님을 구스타브는 육감으로 깨달았다. 그도 그럴 것이, 게임 내 모든 생명체의 생사를 관장하는, 세계의 제작자는 저 꼬마와 초면이었다. 게다가 그의 사망을 명령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제멋대로 죽어버릴 수가 있을까. 혼란스러웠다. 야속하게도, 꼬마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그의 눈앞에 돌아와 있었다. 안 그래도 과음한 탓에 속이 쓰린 상태인데, 비위 상하는...
 엥, 잠깐만. 눈앞에 돌아와 있다고? 헐, 씨발. 진짜네. 구스타브는 저도 모르게 두 손으로 제 입을 가리고야 말았다. 이 새끼, 뭐지? 의문을 가질 새도 없이, 꼬마는 제 총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여차하면 제 앞에 있는 양복 입은 남자를 조지고 튈 셈인 듯했다. 딱 보니까 각이 나온다.

 "너... 뭐냐?"

 "......"

 꼬마 또한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베켓Becket의 워프 게이트 시스템을 통해 자신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건만, 게이트 속에서 걸어 나온 것은 웬 카운터펠트였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다음이었다.
카운터펠트는 가이를 공격하지 않았다. 카운터펠트를 향해 아무리 가까이 다가간다고 한들, 체력 바와 이름을 볼 수 없었으며,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카운터펠트는 이 모든 것들을 처음 본다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게다가, 오늘따라 총도 가이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가 일생동안 한 번도 손에서 놓쳐본 적이 없던 것이었기에 더욱 믿을 수 없었다. 급기야 그것은 가이가 얼마나 쉽게 죽는지를 첫 대면한 자 앞에서 몸소 보여주게끔 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의 반복이었다.

 자신의 목표가 이 '이상한 카운터펠트'가 아니란 걸 깨달은 듯이, 꼬마는 무기를 고쳐 잡았다. 그는 게이트를 빠져나와 빠르게 사방을 둘러봤다. 그 모습은 사뭇 진지해 보이기까지 했다. 곧이어 그는 구스타브를 등지고 한쪽 구석에 앉아 있는 백발의 청년 쪽으로 다가갔다. 그 청년은 허망한 표정으로, 컴퓨터처럼 보이는 무엇들을 마구 조작하고 있었다. 그 또한 꼬마와 마찬가지로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구스타브는 고개를 갸웃거리고야 말았다. 저 꼬마가 자신을 공격한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자리에 있어야 하는 다른 캐릭터랑 자신을 혼동했다든지, 뭐 그런 것들 말이다....... 그렇다고 한들, 아무리 짱구를 굴려봐도 저 녀석들은 도대체가 입을 열어 줄 생각을 않는다.
 어떻게 해야 돌아갈 수 있지?
 곧 멸망할 것 같은 이딴 곳에서 술도 없이 여생을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알딸딸하니 정신도 없어서 그냥 잠이나 자러 가고 싶었지만, 지금은 정말 그런 장난이나 칠 때가 아니었다.
자신이 관장할 수 없는 세계 속에서의 구스타브는 그저 양복남 1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사실을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지금 말 그대로 똥줄 타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는 '염병할... 그 똥쟁이 새끼가 주는 술을 또 받아 처먹으면 난 창조주가 아니라 폐급 피조물이다.'라고 생각하면서도, 다시 한번 저들에게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그것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조그마한 꼬마의 뒤를 쫓으며 그는 입을 열었다.

 "뭐냐, 이게?"

 "......"

 "......"

 "아오, 이 답답한 새끼들."

 구스타브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꼬마와 백발의 청년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최종 보스가 보스전을 열지 않는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숨 쉬듯 비속어를 구사하는 '이상한 카운터펠트'의 모습에, 가이는 불쾌함을 느꼈다. '이게 드디어 돌았나. 싸우기 싫으면 싸우기 싫다고 정정당당하게 말을 해야지'라는 생각이 가이의 머릿속을 스쳤다. 그는 바쁜 사람이었다. 열망이 있고 꿈이 있는 자들이 늘 바삐 움직이듯, 가이 또한 그렇게 움직여왔다. 어쨌든, 더는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던 그는 뒤돌아 구스타브를 똑바로 쳐다봤다. 이번엔 가슴이 아니라, 머리에 한 대 쏴야 끝날 건가 싶어서.
 순간 위화감이 가이의 눈을 가리는 듯했다.
 그동안 가이의 눈에 비쳤던 카운터펠트라고 함은, 항상 옷매무새가 깔끔했었다. "카운터펠트가 폭력적이지 않았다면, 신사적이고 정중한 이미지로 타인의 호감을 샀을 것이다."라는 말은 한때 피조물들의 입버릇이었다. 그러나 지금 가이 앞에 서있는 '이상한 카운터펠트'는 조금 달랐다. 일단, 입이 그보다도 더 험했을 뿐만 아니라 양복도 대충 걸쳐 입은 듯한 모습이었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심지어 술을 마시고 있었던 건지, 그의 곁에서는 술 냄새가 진동했다. 가장 중요한 건... 그의 아이덴티티처럼 보이던 넥타이가 없었다! 넥타이가 있던 곳엔 대충 풀어헤쳐진 칼라collar가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그런저런 차이점들을 깨닫고 깜짝 놀란 꼬마는, 저도 모르게 2단 점프를 하고 말았다. 순식간에 제 키를 뛰어넘은 꼬마를 본 구스타브는 꼬마보다 더 놀라 아예 뒤로 나자빠질 뻔했다.

 "아니, 미친. 지가 무슨 벼룩인 줄 알아."

 "......!"

 물어보고 싶은 게 산더미였다. 여긴 왜 왔는지, 당신은 누구인지, '진짜' 카운터펠트는 어디로 갔는지... 그러나 꼬마는 표정만 겨우 일그러뜨릴 수 있었을 뿐,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이 머릿속에서 뒤엉키듯 굴러다녔으나, 그뿐이었다. 입을 움직이거나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기보다는 '대화창'을 띄울 수가 없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거 제작자가 너한테 대사를 안 넣어놔서 그래. 너도 방금 그런 생각 하지 않았어? 나도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어."

 의문을 가질 때쯤, 구스타브가 입을 열었다. 방금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느냐는 말을 할 적엔 고갯짓으로 청년을 가리켰으나,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채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꼬마는 알아듣지 못했다는 표정이었다. 창조주도 아니고, 제작자라니?
 어쨌거나, 이제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바디랭귀지에도 한계가 있었다. 꼬마는 작은 총을 다시금 매만졌다. 차라리 벽에다 총을 쏴서, 벽이 팬 흔적으로 글씨를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이었으리라. 구스타브는 청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없는 것을 만드는 것보다, 있는 것을 활용하는 것이 더 쉬운 법이니까 말이다.
 영원 같던 침묵이 흐르고 있는 가운데, 무언가를 계속 타이핑하고 있던 청년이 모니터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그는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시고는 천천히 구스타브와 눈을 마주쳤다. 청년이 금방이라도 말을 꺼낼 것처럼 입을 자꾸만 오물거리며 뜸을 들이자, 구스타브는 답답함에 얼굴을 찡그렸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한숨을 쉬며 눈치를 주지도 않았고, 내가 알아서 하겠다며 망치를 꺼내 들지도 않았다.
 이런 분위기는 베켓에게도 큰 곤욕이었다. 그는 자신이 벌인 일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애초에 하나부터 열까지 진실만을 나열한다고 한들, 가이가 믿어줄 리 없었다. 저 '카운터펠트를 닮은 자'는 이미 게이트 안에서 가이와 한 패를 먹은 것처럼 보였다. 이 자가 분명 카운터펠트와 닮았으나, 확연히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이 베켓을 꽤 괴롭게 했다. 차라리 능력 없는 학자라며 자신을 놀려댄 옛 수호자들이, 능력 없는 자신 대신 이 상황을 해결해줬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청년이 자신을 갉아먹는 생각의 굴레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은, 그의 표정을 통해 온 세상이 알 수 있었다. 구스타브는 그를 보며 골치 아픈 타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오랜 -그래 봤자 2초였다- 고민 끝에 헛기침으로 청년을 깨우기로 했다. 자세를 잡는 구스타브의 모습에 가이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쓰러진 자를 다시 때릴 수는 없다고 생각한 듯했다.
곧이어 우리에겐 아직 할일이 남아 있다는 듯 울리는 소리에, 청년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크흠, 제 이름은 베켓, 평범한 학자입니다. 점점 망해가고 있는 이 세상을 고치기 위해 연구 중이지요. 전 워프 게이트 시스템을 개발했고, 어... 음... 이쪽에 계신 Guy 씨를 그가 있던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 드리려...... 했습니다. 그런데... 음..."

 침묵을 깨고 입을 연 백발의 청년, 그러니까 베켓은 말을 술술 잘하는가 싶더니, 뒤로 갈수록 우물쭈물하며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가이Guy라고 이름 불린 꼬마가 한숨을 내쉬며 그를 제 팔꿈치로 툭툭 건드렸다. 시선을 바닥으로 떨군 베켓은 헛기침을 한번 하곤, 곧 말을 이었다.

 "...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워프 게이트를 개발해낸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가이를 돌려보내려 한 게 아니라... 음, 원래 제 예상대로였다면, 당신이 아니라 구스타브 카운터펠트께서 이쪽 세계로 넘어오셨어야 했고, 그에 의해 인류는 패배했어야 했습니다. 또한 그에 의해 이 썩어빠진 세계는 정화되어야 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너 방금 뭐라 그랬냐?"

 "같은 설명을 또 해드리기엔..."

 "구스타브 카운터 뭐라고? 어쨌든 걔가 여기 예비 짱이라며. 내 이름도 구스타브인데, 난 안 돼?"

 구스타브의 말에, 베켓은 싸늘한 눈빛을 띠었다. 가이는 고개를 돌리고 있었지만, 아마 베켓과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리라. 모두가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알았어, 새꺄. 농담이야, 농담. ㅎㅎ."

 "그런 농담은 나중에 하셔도 충분합니다. 당신이 어디에서 오신 구스타브이신지는 몰라도, 카운터펠트와 비슷한 위치에 계신 분이었다면 당신이 관장하던 세계는 지금쯤 꽤 큰 위기에 처해있을 것입니다."

 "상관없는데? 어차피 다 쓸어버리고 다시 만들려고 했음 ㅇㅇ."

 "......"

 듣다 못 한 가이가 구스타브를 향해 총을 한 발 발사했다. 아마도, 집중 좀 해달라는 의미였을 테다. 따끔한 한방에 구스타브는 총탄이 스친 곳을 문지르며 인상을 썼다.

 "하여튼, 돌아가면서 날 존나게 싫어하네."

 "당신께서 관장하던 그 세계는 상관없을지 몰라도, 카운터펠트는 이 세계에 있어 필수적인 존재이십니다. 당신과 그의 위치가 잘못되었으니, 각자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신이 여기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각각의 세계가 파멸하는 속도는 더 빨라질 것입니다."

 베켓이 답지 않게 열을 올리며 말했다. 빠르게 굴려지는 단어들은 그가 얼마나 조급한지 있는 그대로 보여줬다. 가이는 그런 베켓의 태도에 저도 모르게 뒤로 몸을 젖혔다. '그 분과의 재회'를 입에 올렸던 베켓의 모습이 떠올라 가이는 괜스레 소름이 돋았다. 그가 어느 정도로 세계의 구원을 갈구하고 있었는지를, 이런 식으로 알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반면, 구스타브는 너무나도 의연한 모습이었다. 무슨 대단한 말을 하려고 그렇게 뜸을 들였던 것인지, 가벼운 허탈감에 그는 자연스럽게 팔짱을 꼈다.

 "오냐, 그래. 알았다. 그래서 나 지금 보내준다고?"

 사뭇 거만해 보이는 목소리였다.

 "...... 그건... 지금부터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알아보긴 뭘 알아봐. 네가 가장 마지막에 좌표 찍었던 곳이 내가 있던 세계겠지."

 "방금까지 그걸 알아봤습니다만, 제가 마지막으로 지정했던 워프 장소는 당신이 아니라 카운터펠트께서 계시던 장소가 확실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알아봐야 한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카운터펠트가 아닌 당신이 이곳으로 온 이유가 도무지 짐작 가지 않기에..."

 "염병을 싸네 ㅡㅡ. 야, 비켜."

 베켓을 밀쳐낸 구스타브는 컴퓨터처럼 보이는 것들 앞에 무작정 앉아버렸다. 구스타브의 가벼운 터치에도 베켓은 힘없이 바닥으로 주저앉고야 말았다. 아마, 가이와의 전투로 인해 이미 체력이 다 소진되어 있던 탓이었으리라. 둘 사이엔 미묘한 침묵이 감돌았다. 베켓은 금세 고개를 저으며 일어나 그를 말리려고 했지만, 너무 당황한 나머지 손까지 떨고 있었다. 가이는 그런 베켓과 구스타브를 번갈아 가며 지켜볼 뿐이었다.

 "뭐, 뭐를 어쩌실 셈입니까?! 함부로 만지지 마십시오!"

 "기차 화통을 삶아 드셨습니까? 창조주가 다 알아서 하니까, 닥치고 있어 보십시오."

 구스타브가 베켓을 놀리듯이 말하면서도, 빠르게 모니터 속 여러 글자를 읽어나가며 무언가 '조작'하고 있었다. 이 기계를 가장 많이 다루었을 베켓은 어딘가 놀란 표정으로 구스타브의 손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키가 '너무나도' 작아 제대로 상황 파악을 할 수 없었던 가이는, 그들을 지켜보는 것 대신 자신이 들고 왔었던 아티팩트를 만지작거렸다.

 베켓은 처음부터 나를 속였고, 난 결국 이 자리에서 카운터펠트와 다시 한번 싸우게 될 것이 뻔했다. 왜 카운터펠트와 베켓 모두 날 속이려 한 것일까? 수호자들을 배반하고 세계를 다시 무로 돌리는 것이 정말 정당하다고 생각했다면, 그들은 그렇게 행동했을까? 속이지 않고서는 나를 자신들의 편으로 돌릴 수 없는 것이라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모든 것을 능가하는 창조주이자 유일신이라면 패배 앞에 더더욱 관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던가?

 카운터펠트가 원하는 세계는...


 

 "...이. 가이! 안 들리십니까? 당장 그 구슬에서 손 떼십시오!"

 베켓의 찢어지는 듯한 고함이 가이의 생각을 가로막았다. 큰 소리에 놀란 가이는 빠르게 뒤로 물러섰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고개를 몇 번 흔들어 정신을 차린 가이가 소리가 들린 곳으로 시선을 급히 던졌다. 그 끝에는 다시금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베켓의 뒷모습이 보였다. 구스타브는 이미 워프 게이트 앞에서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그는 가이와 눈이 마주치자, 슬그머니 브이V 사인을 보내주었다.
 저 자신감에 넘치는 사인이 모든 것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이 복잡한 상황은 드디어 해결되었고, '이상한 카운터펠트'... 아니, 구스타브는 그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가이는 자신의 세상을 되찾은 구스타브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이제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겠지, 하고 안도하는 표정으로 말이다.

 "뭘 손을 흔들고 자빠졌냐. 너도 가야지?"

 구스타브가 웃음기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선언하는 듯한 웅장함에, 베켓은 헛기침을 하고야 말았다.
가이는 구스타브의 말에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다시금 총을 떨어뜨릴 뻔했지만, 기적적으로 정신을 다잡았다. 당황한 얼굴로 베켓을 쳐다보니, 그는 그냥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왜, 내가?' 하는 가이의 표정에, 구스타브는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도와주면, 보답으로 네가 원래 있던 세계로 너를 다시 보내주는 걸 고려해보는 걸 생각해보는 걸 고민해보도록 하지."

 "......"

 가이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서 지금 보내주겠다는 건가, 말겠다는 건가. 하지만 여기 이렇게 서서 머리만 굴리고 있어 봤자,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차라리 뭐라도 실행에 옮기는 것이 몇 배는 더 나은 선택인 듯 보였다. 베켓과 구스타브가 했던 것처럼.
 그런 고민 끝에, 가이는 겨우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총을 재장전하며 말이다. 그가 마침내 구스타브의 곁에 다다르자, 베켓이 또 한 번 숨을 몰아쉬었다. 최종 세팅을 마친 천재 과학자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제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가이에게 아티팩트를 제자리에 놓아달라고 말하기 직전에도, 베켓은 제 옷매무새를 매만졌다. 긴장하면 나오는 버릇인 듯 보였다. 그 모습이 꼭 카운터펠트와 닮았기에, 푸른 모자를 쓴 어린아이는 저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숨을 참고야 말았다.
 다시금 셋 가운데 불편한 침묵이 감돌았다. 구스타브는 슬슬 짜증이 몰려왔다. 무엇보다도 제가 모르는 둘 사이의 깊은 골이 있음을 구스타브 자신이 눈치챘다는 걸 견딜 수 없었다. 아, 다들 진짜 복잡하게도 산다. 모르긴 몰라도, 카운터어쩌고는 생각보다 예민한 존재일 것이다. 이 새끼들 하는 짓거리 좀 봐라. 그 자식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이미 안 봐도 비디오였다. 그는 불쾌감에 한숨을 쉬었다.

 "... 큼. 한 가지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카운터펠트와 함께 가이 또한 반드시 이쪽 세계로 돌려보내 주십시오. 그들은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있습니다."

 엔터 버튼에 손을 올린 채, 베켓이 입을 열었다.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목소리였다.
그는 구스타브의 눈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가이는 베켓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구스타브는 느리게 눈을 꿈뻑일 뿐이었다.

 "음."

 구스타브의 대답 비슷한 것을 들은 베켓이 엔터 버튼을 누르자, 워프 게이트 시스템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다시금 작동하기 시작했다. 가이는 기분 나쁜 기시감에 총을 더 강하게 움켜쥐었다. 구스타브는 자신이 들어왔던 곳으로, 한치의 의심도 없는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 순간, 나지막한 구스타브의 목소리가 베켓의 연구실을 가득 채웠다.

 "근데, 난 그런 거 잘 모르겠다. 뒤지는 것도 못 돌아오는 것도 그 새끼 운명이지요."

 "... 무슨...!"

 당황한 베켓의 입에서 반사적으로 외마디 소리가 토해져 나왔다. 이미 작동해버린 워프 게이트를 다시 닫을 수도 없었다. '창조주의 구슬'은 어느새 가이의 손안에 들어가 있었다. 워프 게이트의 작동 방식을 눈치챈 구스타브가 가이에게 무언가 명령했음을 베켓이 깨닫게 된 건,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하지만 도대체 왜, 어떻게?

 "간다. 만나서 더러웠고, 다시는 보지 말자."

 이윽고 구스타브는 가이를 바닥에서 들어 올리다시피 안아 들었다. 두 사람은 한 사람의 발을 통해 워프 게이트 속으로 뛰어들었다. 베켓이 허겁지겁 달려와 게이트 안을 들여다본다고 한들 그 모습이 보일 리 없었다.
 백발의 천재 학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두 가지뿐이었다.
모두가 죽어버린 세상에 남겨진 자신의 위치를 재확인하는 것. 그리고, 자신의 유일신이었던 구스타브 카운터펠트가 다른 세계에서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떨며 손톱을 뜯는 것.


後 - https://waiting4surnmer.tistory.com/10

구스타브 카운터펠트; 사망 시 출력 대사 정리

  • 품사
  • 2021. 6. 12. 16:22
더 사랑했기 때문에 패배한 겁니다.
죽음을, 준비하라.

 고고한 분노가 다시 한번 세계를 향해 울린다.

 카운터펠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가이는 제 무기를 고쳐 쥐었다. 단추 크기 정도 되는, 그의 작은 눈에 두려움이란 한 점도 없었다. 되레 입꼬리를 당겨 웃는 것 같았다. 어디 사는 누구 씨의 피조물인데 이 정도는 해줘야 족하지 않겠는가.


 가이는 창조된 세계, 그 자체였다. 퇴락해가는 부분이 있지만, 더욱 성장한 부분이 있다는 점마저 그는 꼭 세계를 닮았다. 멸망 앞에 놓인 세계는 카운터펠트보다도 빠르게 움직였다. 살고자 하는 세계의 본능은 카운터펠트로 하여금 가이를 원하게 했고, 부수게 했다. 삶에 대한 염원은 제아무리 창조주라고 한들 손쓸 수 없는 구역인가. 창조주에게 있어 세계는 그런 존재였다. 유일신 창조주인 자신을 의심케 만드는 피조물. 물론, 그는 저런 의구심이 들 때마다 '역시, 스탯을 너무 많은 줘버렸군. 주사위 따위를 굴리는 게 아니었는데.' 하며 금방 생각을 고쳐먹었다. 콧방귀를 뀌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이럴수록, 실패한 창조가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사실은 오히려 선명해지고는 했다. 저 좆만하고도 소중한, 카운터펠트의 오랜 친구는 지금껏 세계의 수호자들을 몇 번이고 웃기고 울렸다. 세계를 관통하는 존재였을 카운터펠트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것이 가이를 반드시 파멸시켜야 하는 이유가 되었다고 한다면, 그 누가 카운터펠트를 이전처럼 두려워하고 경외할 수 있을까.

 "구스타브 카운터펠트의 패배는 필연이었지."

 세계의 중심이자 가이의 중심에는 이런 믿음이 있었다. 가이는 '베스트 가이'가 되기 위해 망토를 두르고, 무기를 쥐어든 것이 아니었던가. 창조주의 필패와 세계의 필승은, 그런 가이를 앞에 둔 카운터펠트가 인간의 몸을 입었다는 데서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인간을 상대하기 위해 그들의 몸을 받아 지상으로 내려오는 창조주는, 신을 능가하려는 욕심에 잡아먹히고야 만다. 창조주 자신보다 세계가 더욱더 악함을 인정하지 못해서 패배한 것일까? 아니면 이기고자 하는 욕심이 인간보다 적어서 패배한 것일까?
모순적이지만 이미 인간은 카운터펠트의 패배 이전에, 또 다른 전지전능한 창조주에게 패배를 안겨준 적이 있다. 카운터펠트가 조그마한 따발총에 죽어갈 때, 그는 간지나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창조주들은 인간을 필요 이상으로 사랑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필요 이상의 스탯을 부여했고, 필요 이상으로 그들에게 마음을 주었다. 누구는 인류를 파멸시키려 했으나 다정했고, 누구는 애초부터 인류를 구원하고자 이 땅에 내려왔다.
더 사랑하는 쪽이 진다고들 하지 않던가. 카운터펠트는 이미 이 땅에 다녀갔다는 그와 같았다. 전지전능한 유일신 구스타브 카운터펠트는, 인간을 이기지 못한 게 아니라 사랑에 이기지 못한 것이다. 적어도 자신의 대적자인 가이에게 피아노를 연주해주기 위해 편곡하고 연습했을 점과 자신의 공격을 피할 수 있을 만한 구역을 미리 알려준다는 점에서는 꼭 그렇게 보였다.
게다가 '죽음을 준비하라'라니. 꼭 가이의 죽음을 손수 인도해주고,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기까지 할 것 같지 않은가(아니더라도 그렇다고 하자... 전지전능 유일신 이異능력 탈취 및 조작이 가능한 창조주가 고작 따발총 들고 있는 꼬마의 총탄 몇백 대를 고스란히 맞아서 네 번이나 행성 밖으로 쫓겨났다는 게 말이나 되는지 카운터펠트한테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베켓의 신호에 맞춰, 피아노 건반을 놀리고 있던 카운터펠트는 그런저런 생각을 하며 한숨을 뱉었다. 그래, 결국 사랑에 져버린 창조주는 손쓸 새도 없이 두 번이나 패배해주었다. 그러나 창조주를 세계 밖으로 쫓아냈다고 한들, 인간은 인간이었고 승리의 결과가 언제나 달콤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한 번의 승리로 몇 번의 재앙을 불러올 뿐이라면 패배하는 것이 오히려 승리하는 것이지만, 되고자 하는 욕망은 가이의 눈을 가려버렸다. 결국 무너져가는 세계를 포기할 수 없어 가이는 저 자신을 더욱 끌어안게 되었으니, 악에 받친 인간이란 사탄보다 무서운 것이었다.

 가이의 존재는 카운터펠트에게 있어서 언제나 모순이었다. 제거하기 위해 창조하였고, 창조하였으므로 제거해야 했다. 그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준 카운터펠트의 목숨을 그는 앗아버리려 하고 있었다. 또한 그는 구스타브 카운터펠트의 희망이자 절망이었다. 그야말로 인간다웠다.
 하지만, 가이 또한 카운터펠트에게 할말이 많았다. 수호자들을 대신 제압해주었더니, 창조주라는 놈이 은혜도 모른 채 제게 온갖 공격을 퍼부어댔으니 말이다. 두 번 쫓겨났으면 됐지, 아직도 미련을 못 버리고 다시 왔느냐며 따질 만도 하겠다마는 시종일관 웃는 얼굴.
카운터펠트는 그런 가이의 변하지 않는 표정에 오히려 피로함을 느꼈다. 사랑이니 뭐니 했지만, 저 얼굴을 보면 짜증이 나고야 마는 건 어쩔 수 없잖은가. 베켓처럼 얌전히 사라져주면 좀 좋았을까 하며 뒷머리를 긁적인다.

 어디 보자, '당신'이 보기 좋게 측면에 서 있자니 극의 막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제 손목을 보며 옷매무새를 다듬던 카운터펠트였지만, 당연하게도 가이와의 악수 따위는 없었다. 가이도 무기를 다시 확인하며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뗐을 뿐이었다.
세 번째 만남이었지만 긴장감은 처음보다 더욱 고조되어 있었다. 이번이 마지막이기를 바라며, 베스트 가이는 고개를 들어 드림 이터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저기 사는 아무개 씨였다면 저 작은 피조물에게 쫄지 말라고 했겠지만, 카운터펠트는 달랐다. 좀 쫄아 보라고 으름장 놓고 싶은 마음을 삼켜버렸다. 대신, 다시는 만날 일이 없으리라고 선언하기로 했다.

 "죽음을, 준비하라."

 고고한 분노가 다시 한번 세계를 향해 울린다.

 카운터펠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가이는 제 무기를 고쳐 쥐었다. 단추 크기 정도 되는, 그의 작은 눈에 두려움이란 한 점도 없었다. 되레 입꼬리를 당겨 웃는 것 같았다. 어디 사는 누구 씨의 피조물인데 이 정도는 해줘야 족하지 않겠는가.

 카운터펠트는 그동안 수호자들에게서 갈취해왔던 힘을, 할 수 있는 한 효율적이면서도 효과적으로 방출해내야 했었다. 그동안 짜 놓았던 행동 루트를 기계적으로 실행해나갔다. 피할 수 있을 자리와 발판 등을 만들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랑보다는, 정정당당하게 이기고 싶었던 것뿐이라고 일축하기로 했다. 잡음에 집중해서는 안 되었다. 상대는 세계이니까.
그러나 중력을 반전시키고, 그의 발자취마다 폭발을 일으켜도 그 작은 몸은 좀처럼 쓰러져주지 않았다. 예상은 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이를 갈았다. 언제까지 이 꼬마의 놀이 상대로 있을 수는 없잖은가! 이걸로, 정말 끝을 내야 했다.

 그 순간이었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선언은, 되려 카운터펠트의 죽음을 예견한 꼴이 되었다. 분노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그릇은 결국 깨지고 말았다. 몸이 제 말을 듣지 않았다. 양복이 답지 않게 흐트러지는 것이 보였다. 카운터펠트가 땅을 딛고 서 있자니, 가이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세상을 비추고 있던 창조주의 눈에는 오직 가이만이 비치고 있었다.
다른 건 모두 멸망한 곳에서 왜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가.
분노가 가라앉는 듯싶더니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뜨거움이 속에서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카운터펠트는 눈을 크게 떴다. 감정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상기하며 제 입에 고인 피를 모아 뱉어낸 뒤, 옷매무새를 다시 다듬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의 침묵이 감돌았다. 이렇다 할 말도 없이 카운터펠트가 있던 곳에는 어느새 눈을 찌르는 듯한 섬광만이 자리하였다. 폭발음이 시작되자 가이는 작은 손으로 제 귀를 감싸고 바닥에 엎드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수호자 중 한 명이 바닥에 쓰러진 가이를 일으켜 세웠다. 또 다시 세계가 이겼다고 선포해주었다. 그러나 가이는 전혀 후련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후퇴할 거였으면, 이 세계를 포기하고 다른 세계를 만들어내면 그만이지 않은가. 아니면, 가이 자신의 세이빙 능력을 탈취하면 그만이지 않은가. 가이는 최선을 다해 움직인 자신의 노력이 무색해짐을 느꼈다. 먹구름은 걷혔지만, 쌍무지개가 뜨지 않았다.


 창조주는, 마지막 탄환을 제 가슴에 제대로 명중시켜준 피조물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구스타브 카운터펠트는 세계를 위한 유일한 존재였고, 동시에 세계로부터 미움받은 유일한 존재였다. 창조할 줄 아는 자란 해야 할 일이 있는 자이기 때문에, 그는 갈등의 중심에서 악역을 자처해야만 하는 노릇이었다. 스나이퍼를 사랑하는 빌런은 그냥 호구에 불과하지만... 카운터펠트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감정은 사랑임이 분명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