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혼자, 저택에서.

 축 늘어진 것은 린의 머리카락뿐만이 아니었다. 과연 우리는 어디까지 잡아먹혀야 한을 풀어줄 제물로서의 소임을 다할 수 있었던 걸까. 린은 그 깊음이라고 할 만한 것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마음으로는 이해하지만, 그뿐이었다.

 나즈막이 한숨을 뱉으면 이 넓은 저택이 온통 그것으로 가득 차버린다. 축축하다. 새벽녘에 홀로 몇 번이고 거닐었던 이 공간이 아득히 먼 것으로만 느껴진다. 남자는 분명 지금쯤 린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한 채, 그녀에게 울지 말라고 말했겠지. '울지 말라니, 네가 뭘 안다고. 죽지 말라는 말도 계속 무시했으면서.' 린은 그렇게 생각하며 손등에 축축한 눈을 부볐다. 손에 쥔 남자의 시계가 그녀의 볼에 거칠게 부딪혔다. 사람 다룰 줄 모르는 건 남자도, 그의 시계도 마찬가지였다.

 그다지 울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자신의 짧은 생각으로 유카가 그녀를 저버렸을 때도, 세이타로보다 정신력이 약했던 유우타가 제멋대로 되어버렸을 때도 린은 울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런 건 지금의 린에게 어울리지도 않았을뿐더러, 이곳의 모두를 일의 해결로부터 흩뜨리는 일이 되어버리니까. 그래, 모두. 지금의 야마자키 린을 버티게 해주었던 것은 린과 함께 있어주는 다른 셋이었다. 세간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올곧게 린을 대해주는 셋을, 린은 있는 그대로 지키고자 부단히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노력했지만, 정말 최선을 다했지만.

 "유카, 정말 미안해."

 담백한 사과에서 '내가 전부 다 망쳤어.'에 가까운 자기 비관이 뚝뚝 흘러내렸다. 아마 세이타로는 이런 린의 옆에서, "유카는 너를 원망하지 않을 거야. 그것보다 빨리 나갈 방도를 찾아야 해."라는 간편한 말을 했을 것이다. 한 손에는 서가에서 꺼내 온 책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린에게 손을 뻗으며 잡으라는 듯 손짓했을 것이다. "망할 대머리 자식." 린은 그 말을 직접 귀로 듣고 싶었다. 고된 일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어 얄쌍하면서도 굴곡이 잘 잡혀 있는 그 손을 직접 잡고 싶었다. "젠장..."
린은 관계에 취약하다. 원한이 깊은 그것은, 어쩌면 그것을 알고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이 사건의 내막을 자세히는 알지 못하지만, 린은 줄곧 유카의 일을 생각했다. 쉽게 잠에 들지 못하고 꼭두새벽에 일어나 창고를 뒤졌고, 잘 쓰지도 않았던 머리를 굴려 유카를 보호하려 했다. 자신이 아닌 유카가 그런 일을 당했어야만 했음을 받아들일 수 없어, 되레 인어의 마음을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린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린은 관계에 취약하다. 평정심 내지는 기둥을 잃어버린 린의 마음은 대를 잃어버린 아이비와 같았다. 없어도 살 수는 있지만, 살랑거리는 바람에도 크게 휘청이는 그 모습은 참으로 안쓰럽게 보였다.

 살랑거리는 바람에도 크게 휘청이는 그 모습은 세이타로에게 있어 참으로 안쓰럽게 보였다. "이제서야 하는 말이지만, 다른 사람이 나를 보고 너의 '사육사'에 가깝다고 했었는데, 알고 있어?"라는 어찌 됐든 상관없을 말들을 캔맥주에 섞어 마셔버릴 수 있을 만한 시간은 없었다. 너만은 살아 나가야 한다는 무책임한 말을 끝으로, 세이타로의 시간들은 전부 린에게 던져졌다. 린은 이 시계의 의미를 파악할 수 없었다. 다만 이 작고 쓰잘데기 없는 것을 맡겨두고 자유로워진 남자가 괜히 또 미워질 뿐이다. "다시 살아야 한다니, 진짜 네가 뭘 안다고." 린의 손끝에서 뿌리쳐진 시계가 허무하게 깨졌다. 맡겨졌던 세이타로의 모든 시간이 린의 손끝에서 바스라졌다. 찢어지듯, 부서지듯 울리는 소리에 린은 자기도 모르게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깨진 유리 사이로 축축한 늪의 물이 늘어지듯 흘러나왔다. 몇 명이나 저 얕은 물에 잠겨 죽었던 걸까. 린은 그렇게 생각하며,